김병호 작가는 충북 청주시 외곽의 한적한 마을에 살며 초중고교를 마쳤다. 동네마다 한 두 명은 꼭 있는 바보 형, 누나와 함께 땅따먹기 놀이도 하는 등 동심을 키울 수 있었다.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 습관은 이 시기에 생성되었다. 4월의 아지랑이 피는 들판이 부지불식간에 유채 꽃밭으로 바뀌는 장면이 선하다. 작가는 “전원 마을에서의 성장 배경이 되려 작품에 도시적인 요소에 강하게 집착하게 한 게 아닌가” 자문한다.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1901~1991)는 '어둠이 내린 정원의 표면을 주의 깊게 청취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 설치한 은 채도가 맑은 노란색의 유연한 구조물이 꽃의 암술과 수술을 연상케 한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수십 개의 파이프는 직선으로 곧게 뻗었고 파이프의 끝은 나팔 모양이고 소리가 난다. 소리는 제품을 조립하는 부품 단위의 기능만 한다.조각가 김병호(50)는 일사분란한 군대의 행렬 행사를 의식하였다고 한다. “조형미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나의 완성된 매스(mass, 덩어리)로 표현하고자 했다.(작품이) 크고 선을
지난해 여름 서울 인사동 갤러리 토포하우스 전시 에서 보았던 정혜나 작가의 피플 시리즈가 뇌리에 남아 있었다. 정혜나 작가는 200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였고, 2018년 귀국하였다. 미국에 살며 작업한 도시 이미지의 드로잉, 페인팅, (폴리머클레이- Polymer clay- 재료) 오브제(objects)는 사람 이미지들을 나열하거나 중첩시켜 현상학적 시선에 따른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사람 형태의 오브제들은 대체로 패턴을 이루며 서로 완벽하게 타인일 수 밖에 없
는 2008년 광장에 대한 해석과 이어 진다.작가는 2009년 여름 평택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공장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인 강경 진압을 이명박 정부의 광장 촛불 시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관심 돌리기로 본다. 작가는 공권력이 쌍용차 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자리에 만든 꽃밭(화단)을 많은 전경이 지키는 풍경을 그렸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일방적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국가폭력과 거액의 손해배상에 시달려 죽어간 동료들을 추모하고자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지만
오늘은 제주 4. 3사건 76주년을 앞둔 부활절이다. 서귀포 중문 성당은 2018년 10월 ‘4.3 기념성당’으로 선포됐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가 있었고 4.3때는 학살터였다.문창우 주교는 당시 ‘4.3 기념성당’ 지정의 의미를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자기 낮춤과 부활 안에서 당신의 전능을 신비하게 드러내시고 그 낮춤과 부활을 통해 악을 이기셨던 것처럼 제주 4.3으로 부서진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도 악에 굴하지 않는 평화의 사도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짐한다”고 밝혔다.박영균(58) 작가에게 2013년의 아름
남여주(61) 작가는 20여년을 강의해오던 대학의 교과목 통폐합을 계기로 작업에 전념하였다. 이후 미술 시장의 부침에 상관없이 꾸준하게 작품이 팔리는 인기 작가군에 올라섰다.작가는 시장의 요구대로만 작업하지 않는다. 매년 할 만큼의 작품만을 하면서도 동일한 구도나 색채는 배제하여 왔다. 남여주 작품이 가진 정체성은 ‘물 선’이다. 이 '물 선'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추어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이기도 하고, 봄날 도심 하천 위에서 내려다본 수면의 물살이기도 하다. '물 선'은 작품을 눕혀 드리핑 방법으로 작업하였다.2022년
대지를 캔버스 삼은 미술가이자 플로리스트인 응향(凝香) 박춘숙(66)의 시그니처이자 상징인 보리는 대체로 꼿꼿이 서고, 억새는 누워 날린다.작가는 봄밤 달빛이 요요한 보리 밭, 소리 없이 흔들리는 보리를 표현하고 싶었다. 분명 그 달밤의 보리들은 제 각각 춤추는 그대로 모습이어야 했다.작가에게 보리는 노스텔지어이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병영국가체제를 따른 학교는 도시락 검사를 하였다. 중산층 가정도 보리에 쌀 한 줌 넣은 혼식을 해야 했다. 보리는 강요받은 평등의 상징이다.달 밝은 가을 밤이면 도토리를 주으러 강원도 횡
김남표는 2014년 8월 영화감독 민병훈, 음악가들과 협업하여 전시 (Phantasmagoria)를 열었다. 가나아트 전속으로 있으면서 가나아트 30주년 홍보 영상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민병훈과 알게 된 게 협업으로 이어졌다.전시는 '순간적 풍경-양성성 ‘(Instant Landscape-Androgyny)이 주제였다. 그가 주연한 영화 는 작가인 주인공이 작업 세계와 앞으로 펼쳐낼 작품에 대한 모티브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걸 줄거리로 삼는다. 소설 에서 보듯 최초 텍스트는 다양한 문화 컨
작가가 작업의 맥락(context)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된 말로도 들린다.김남표(54) 작가는 2023년 3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남벽 원정대 박영석(1963~2011)대장, 신동민(1974~2011), 강기석(1978~2011) 대원 수색대로 현지를 다녀왔다. 같은 해 10월에 서울 상암동 산악문화체험 센터에서 보고전 일환으로 ‘탈(脫)캔버스’ 형식으로 '안나푸르나(Annapurna)' 개인전을 가졌다.그가 안나푸르나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일견 모교 은사인 정영목 서울대 미대 명예 교수와
작가 유혜정 작품은 색이 뚜렷하고 선이 명료하다. 어린 시절부터 종이 오려 붙이기 (컷 아웃)로 인형을 만드는걸 좋아했다. 가위로 선을 따라 형태를 만들던 그 감각, 허공에 뜬 듯 가위질로 선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은 붓질로 옮겨온 듯하다고 말한다.작가의 드로잉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색의 선택은 감각적이다. 그림의 모티브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 찰나를 포획하여 대상과 아우라를 조형적으로 한 묶음으로 만들어야 하고, 작가적 의도를 꽉 채우려 노력한다.미술 대학을 졸업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을 획득하는 절차를 이해
브루노(Bruno / ※주: sns 또는 해시태그는 tao2bruno) 작가는 선과 선을 연결하는 오토매틱 드로잉 기법을 구사한다. 시 작법(詩 作法)의 무의식적인 자동기술법과 유사하다. 브루노에게 운율이 있는 문장은 예술적 기반이기도 하다.기본 구도를 잡은 뒤 하나의 형태(모양) 또는 캐릭터를 정하고 그리기를 시작하여 이미 만들어 놓은 캐릭터와 형태를 활용하여 이어간다. 이들이 조화와 균형을 갖도록 의식할 뿐 작가는 “(그리는 동안)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그는 기분에 따라 작업하면서 장르와 상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1903~1969)의 미학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 예술 작품의 해석은 작품이 완성된 후에 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의 성립 자체에 참여한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SNS를 통해 간헐적으로 관찰한 성희승 작가의 작품은 형상과 구도 등에서 평이했다.대상이 어어진 게 아니라 한 곳에 모여 있는 군집 형식으로 보였다. 색은 짙고 라인은 두터웠다가 그 반대를 오갔다.그렇게 관찰을 하다가 지난 10일 (작품의 성립에 참여하는 과정일 수 있는) 작업실 인터뷰를 하러 갔다. 작가는 한달
국가간 경쟁이 되어버린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미술에서 글로벌 작가군의 포진 여부는 그 국가의 비평 수준과 전시기획 능력에 비례한다. 작가는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업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노력과 헌신은 기본이고, 작품에 대한 방향, 화업(畵業)의 여정에서 겪는 여러 상황에 대한 판단이 관건이 되기도 한다.전시기획 부문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이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종종 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인맥으로 유명 미술관의 컬렉션을 들여와 입장권과 굿즈 판매 수익을 목표로 하는 일명 블록버스터 전시의 커미셔너는 이벤트,
작가 리테시 아즈메리(Retish Ajmeri, 44세)의 조각 작업은 신상(神像)을 제작하는 가족 사업이 출발점이다. 인도의 신상은 신화에서 비롯한다.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이 하늘을 날다가 빨갛고 예쁜 태양을 맛있는 망고라고 생각해 입에 넣었다는 신화가 모티브 된 게 작품 ‘해를 삼킨, Swallowing the Sun’이다. 모든 신들이 하누만의 몸에서 태양을 꺼내고자 한다. 신들의 왕인 인드라가 벼락을 내려 하누만을 죽여 태양을 꺼냈으며 바유가 하누만을 소생시켰다. 비유는 하누만의 영적 아버지이다. 자연을 자신의
지난달 말, 1년 6개월만에 강원도 원주시 외곽 치악산 국립공원 초입에 자리잡은 임동훈 작가 작업실(studio)을 방문하였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거주, 작품 보관, 작업 공간 등 여러 의미를 갖는다.임동훈은 8년여전 겨울, 영화 촬영팀의 미술감독으로 왔다가 자리 잡게 되었다. 작업실을 직접 설계했고, 주민들과 같이 지었다.그의 중대형 크기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특성은 패턴들이다. 정교한 패턴은 페인팅 의 결과물이 아니다. 미디엄으로 소금을 사용한 삼투압 현상이 패턴을 만들었다. 작가는 캔버스 평면의 기울기를 조절하는 정도의 개입
가장 빛나는 시절이어야 할 30대 중반, 전인경은 절에 갔다.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처해있었다. 개신교 신자였고, 불교가 종교라는 개념은 없었다. 작가는 진월스님의 권유로 태고종 총본산인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전인경이 맞부딪힌 것은 많은 이들이 한 방향으로 마루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광경이었다.사람들은 시왕초 위에 화선지를 대고 선묘를 따라 그리고 있었다. 시왕(十王)은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명부전(冥府殿)에서 볼 수 있는 10명의 왕을 일컫는다. 명부전은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한국의 눈 덮인 산의 풍경을 담은 작품 과 인도의 보리수 나무를 담은 은 두 계절을 병행 비교해 그린 것이다. 배희경에게 4계절이 분명한 한국 기후와 늘 여름인 인도 기후를 교차하며 살아가는 삶은 자극이 되고 작업에 직접적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배희경에게 시댁인 인도는 자기 생활의 부분이다. 여행지가 아니며 인생의 주변부가 아니다.10여년 이상 인도에서 살고, 오가며 점차 인도인 내부자 시선을 갖게 된 배희경에게 제 3의 인물이 다룬 인도의 역사적 사건 관련 이미지들은 다르게 보이고 해석된다. 사진 작가 앙리 브레송(
조각가 송필의 전작(前作), ‘직립의 나날들’, ‘실크로드’ 연작은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삶을 동물로 은유하여 표현하였다. 이들 작품은 낙타나 말이 돌덩이나 신발꾸러미, 서랍장을 등에 지고 힘겹게 옮겨 다니는 모습이다. 보이는 그대로의 형상과 무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중된 중력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최근 3년여 제작한 작업들은 소도(蘇塗)와도 같은 서식지(refugia), 레퓨지아로 찾아가는 생명에 초점을 두었다. 레퓨지아는 멸종 단계인 생물체가 소규모로 생존하는 마지막 거주지를 뜻한다. 낙타를 비롯한 동물의 등
홍경택의 모놀로그(Monologue) 연작이 변화하고 있다. 연필로 만들어진 새장에 앉은 새가 있고, 보석 사이 떨어진 새가 있다. 새는 종교적으로 맑은 영혼을 지녔고 가냘픈 생명으로 상정했다. 어떤 위기 징후를 탐지하는 예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생명의 무게를 가진 새와 생명 없는 보석 사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고 있다.“꿈에서 시작된 손은 신(하느님)의 손이다. 그동안 손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손 안에 든 사물은 상대적으로 작다. 신성을 뜻하는 손은 크게 그렸다.”가톨릭에서 얘기하는 환시 같은 걸 경험했는
홍경택(55) 작품들 대부분은 펜(Pens), 서재(또는 서점, Library), 펑케스트라(funk+ orchestra), 모놀로그(Monologue) 등의 이름이 붙은 연작이다. 각 작업은 1990년대~2000년대 시작되었다.첫 개인전을 2000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미술공간(일명 인미공)’에서 타이틀 ‘신전’(神殿)으로 개최하였다. 화업(畵業)을 시작하는 전시 타이틀을 왜 신전으로 했을까?놀랍게도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1986)의 단편, '원형의 폐허들'에서 홍경택 작품 세계의 출발과 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