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태양광 때리기'에 태양광 설치 실적 '반토막'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축소…반도체 등 수출기업 위기

ASML "재생에너지 전력 없는 한국에서 어려움 계속"

태양광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중소·중견기업 상당수가 구조조정에 착수한 가운데 폐업 위기에 직면한 곳도 적지 않다. 대기업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국내 최대 태양광 기업인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은 한국 사업 축소라는 극약처방을 단행했다.
태양광 업계 위기는 예견됐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한 판가 하락으로 국내 기업 경쟁력이 약화한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태양광 때리기'가 본격화했다. 또 내수 시장을 지탱해 온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RPS), 한국형 소형태양광 고정가격계약제도(FIT) 등 재생에너지 지원 제도가 동시에 축소 또는 일몰 됐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주요 정책.
정부의 재생에너지 주요 정책.


이로 인해 국내 태양광 설치량은 3년 만에 반토막 났다. 2020년 5GW에 육박했던 설치량은 2023년 2.7GW까지 감소할 것으로 지난해 말 예측됐다. 국내 태양광 모듈업계의 생산능력이 10GW 안팎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업계가 감당할 수 없는 수급 불균형이다. 관련 중소기업들은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이에 태양광 기업들이 생산라인 스위치를 끄고 있다. 해외 수출길이 막히고 내수 시장마저 급랭하면서 폐업, 희망퇴직 등 마지막 절차를 밟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원의 손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의 태양광 때리기 속에 위기는 가중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문재인 정부 시절  GW단위의 태양광 보급 계획이 발표됐지만, 현재는 기피 대상이 되면서 존폐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수 시장을 겨냥해 생산시설 확대 투자를 단행한 기업은 당시 결정이 결과적으로 독이 되어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태양광 설치 실적. (자료=태양광 발전협회)
태양광 설치 실적. (자료=태양광 발전협회)


문 닫거나 해외로 나가는 태양광 업계…무너지는 태양광 생태계

국내 태양광 업계의 대표주자인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역시 지난해 말  3.5GW 규모로 한화큐셀의 태양광 국내 거점 역할을 해왔던 충북 음성의 태양광 모듈 공장 생산라인 가동중단을 결정했다.

한화큐셀은 태양광 셀·모듈을 생산하는 충북 진천 태양광 공장을 중심으로 미국 등 주요 시장 수요에 대응한다고 하지만,  한화솔루션은 결국 공장 매각, 생산라인의 미국 이전 등의 제한적 선택지 안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2007년 독일 기업 솔라월드AG와의 합작을 통해 한국진출 후 100% 한국기업으로 전환한 태양광 모듈 제조사 솔라파크코리아도 워크아웃과 매각 등의 고비를 넘겨 재도약을 꿈꿔왔으나 폐업을 앞두고 있다. 솔라월드 코리아는 2016년 미국 태양광 업체 솔라리아와 HD모듈 원천기술을 이전 받아 양산을 개시한뒤 국내외에서 연이어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중견 업체로 발돋움해왔다. 전라북도 완주를 거점으로 800MW 모듈 생산라인을 갖추고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 수출과 내수 둘 다 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때 1,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기도 했던 솔라월드 코리아는 새 정부의 태양광 정책 변화의 태풍에 휩쓸리면서 결국 좌초 상황을 맞았다. 

한솔테크닉스는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2010년 태양광 모듈 50MW를 생산하기 시작해 현재는 오창 공장에 연산 600MW 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중견 업체다. 이 업체 역시 역시 지난해 말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700㎿ 규모 모듈 공장을 통해 국내 수요에 대응해 왔던 신성이엔지 태양광 사업 부문도 최근 생산라인 가동률을 낮췄다.

이처럼 태양광 업계가 고사하면서 태양광 상태계는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 “정작 RE100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수요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때 정작 우리 재생에너지 기업은 남아 있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우려다 .

한화큐셀 충북진천 공장. (사진=한화솔루션)
한화큐셀 충북진천 공장. (사진=한화솔루션)

"한국, 재생에너지 조달 어려운 나라" 국제적 지적 잇따라  

대한민국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 가운데 하나라 지목 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더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공개정보프로젝트(CDP) 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RE100 2023'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 중인 국내외 RE100 가입 기업 165개사 중 66개사(40%)는 한국을 '재생에너지 조달에 장벽이 있는 국가'로 꼽았다. 
재생에너지 조달 방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32개사로 가장 많았고, 높은 비용과 제한적인 공급을 지적한 회원사도 27곳이나 됐다. 어느 나라나 대체로 ‘높은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비용은 차치하고 재생에너지 조달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어려운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보고서는 전세계  RE100 가입 기업들이 연간 전력 소비량의 5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전력 수요의 9%만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고 분석했다. 2022년 말 기준 RE100을 선언한 한국 기업은 31개사에 달한다. 2022년에 새로  RE100에 가입한 전 세계 기업 중 전력 소비가 가장 많은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7곳이 한국 기업이었다. 이들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28TWh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조달이 힘든데도 RE100 회원사 중 전력 소비가 가장 많은 기업의 본사 소재지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은 자국 내 공장을 지으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등 각국은 RE100 달성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장이 해외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더 클라이밋 그룹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안정적으로 확대하도록 국가 재생에너지 목표를 상향하는 등 일관된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며 거꾸로 달려가고 있다. 원전은 재생에너지에 포함되지 않는다. 

RE100 가입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불안한 미래 

게다가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은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연차 보고서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전력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계속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 했다. 반면 주요 경쟁국인 대만과의 전력구매계약(PPA) 사례를 예로 들면서 대만을 간접적으로 추켜 세우고 있다. PPA는 발전사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기업이 직접 구매하는 것으로, 탄소 감축의 주요 수단이지만 국내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ASML은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 과정에서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으로, 원전 없이 신재생에너지로만 이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ASML은 올해 대만 사업장에서 사용할 전력의 75%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할 방침이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ASML은 단순한 반도체 장비업체가 아니라, 필수 독점 업체이기 때문에  ASML의 장비를 받지 못하면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하지 못한다.  특히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초미세 공정·고성능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ASML의 탄소중립 달성 요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피할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RE100에 가입한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기업이다. 2022년 기준 2~5위 기업들이 사용한 전력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기를 썼다. 삼성전자는 2022년 기준, 국내 전력사용량(2만1,731 GWh·기가와트시) 중 재생에너지 사용(1,959GWh) 비율은 9.0%에 불과하다. 주요 반도체 생산시설이 국내에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RE100에 가입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는 2050년까지 최대 10GW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소한 이 전력만이라도 재생에너지 공급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정부는  딴전이다.

한국전력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 생산량의 9% 미만을 차지한 반면, 원자력과 화석연료는 거의 90%에 달했다. 반대로 국제 에너지 트렌드는 재생에너지 친화적이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점점 더 공급망 전반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고립화는 먼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닥친 현실이 되고 있다.

언제까지 RE100을 외면?…한국 '나홀로 집에?'

지난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123개 국가가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3배 늘리기로 약속했다.  당연히 우리 정부도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러고도 정작 국내 정책은 거꾸로 일변도이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 지향적이고 에너지 다소비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국제적인 기후대응 기조 흐름에 맞출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수요는 갈수록 늘우 상향 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의 주축인 반도체 업계가 막대한 양의 전기를 사용하지만 재생에너지 인프라는 기업이 아닌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재생에너지로 향하는 세계적인 경쟁은 불가피하다.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전기 소비자인 한국의 기업들이 재생에너지가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더 클라이밋 그룹도 이  신호를 국내외의 정책 결정자에게 강력히 보내고 있다. RE100 캠페인은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데 방해되는 해상풍력 입지 및 인허가 규제,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등 정책적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RE100의 대안으로 원전을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CFE·Carbon Free Electricity)를 활용해 탄소 중립을 추진하는 CFE 이니셔티브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나홀로 집에’ 정책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걱정이다.

이인형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분야 국제공인 CVS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젝트 컨설턴트다. 서울대 농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한국신용정보에서 기업 평가·금융VAN업무를 맡았고, 서울대 농생대에서 창업보육 업무를 했다. 지금은 소비자 환경활동 보상 플랫폼을 구축 중이며, 개인신용정보 분산화 플랫폼도 준비중이다. 금융‧산업‧환경‧농업 등이 관심사다. 기후위기 대응 세계적 NGO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이면서, ESG코리아 경기네트워크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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