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9일 만에 누적관객 400만명 돌파

<파묘>는 기대했던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아니다. <사바하>에서 느꼈던 지적 즐거움은 사라지고 공포물의 느낌은 커졌다. 게다가 묫바람과 연결되는 백두대간에 박힌 쇠말뚝 설정은 당황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 배우들의 명연기가 영화를 이끌고 있다.

쇠말뚝 관련된 두 번째 이야기가 무리 없이 흘러간 데에는, 풍수사 최민식 배우의 힘이 크다. 여기에 무당 김고은과 법사 이도현, 장의사 유해진의 연기가 빛을 더한다. 전작에서 비롯된 기대를 접으면 재미있는 영화다. 무속신앙이 유발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에 더해 신선하고 생경한 장면도 있다. <파묘>에 대한 사전 태도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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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현 감독의 <파묘>에 대한 기대

장재현 감독의 작품(<검은 사제들>, <사바하>)은 공포의 느낌은 있지만, 미스터리와 스릴러 성격이 더 강하다. 피해자에 집중하는 대신 문제의 원인을 찾아 이를 전문가가 해결하는 구조다. 더구나 그 과정이 논리적이고 추리적이다. 여기에 더해 영화에 소개된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은 작품의 품위를 높여주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바하>에서 4대 천왕에 대응하는 4명의 나한의 존재라든지, 혹은 사이비 종교인 사슴동산의 경전 존재 등은 복선인 동시에 극을 끌어가는 주요 구성요소이다. 나중에 교주의 실체가 밝혀지는 반전도 있다.

하지만 <파묘>에선 이런 과정과 재미가 줄었다. 대신에 대살굿(일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는 굿), 혼 부르기(신체를 떠난 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굿), 도깨비 놀이(빙의된 혼을 속여 정체를 알아내려는 놀이) 및 일본 귀신(정령)과 한국 귀신(할매)의 대치 등 시청각적인 볼거리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비록 풍수사, 무당, 장의사라는 전문가를 등장시키지만, 1부 서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억울함을 품은 귀신 이야기다. 물론 다양한 굿의 재현과 도깨비 놀이 및 새로운 귀신의 등장(일본 귀신)은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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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배우의 걸출한 연기

풍수사 상덕인 최민식 배우가 영화를 끌고, 무당 화림 김고은, 법사 봉길 이도현 그리고 장의사 영근 유해진이 뒤를 받치는 모양새다. 서사는 크게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묫바람으로 인한 집안의 병고를 해결하고, 2부는 대한민국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힌 쇠말뚝 제거다.

조상의 묫자리로 인해 3대가 아픈 집안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들 4명이 뭉친다. 상영시간 2시간 14분 중에 1시간 10분 정도가 되면 조상의 시신을 태우면서 1부는 일단락된다. 솔직히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하면서 걱정이 됐다. 그즈음에 첩장(관 밑에 다시 묻은 관)이 등장한다.

1부와 2부의 연결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다. 갑작스런 관의 등장도 그렇지만, 일본귀신이 등장하고 이것이 다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진다. 오컬트 장르의 판타지적인 요소를 예상했는데, 과거 역사로의 회귀다.

그런데 이런 단점을 커버해주는 게 바로 최민식 배우다. 풍수사로서 그의 자연스런 연기와 뚝심이 이 간격을 메우고 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맞는 연기다. 아마도 그의 딸이 임신한 상태에서 결혼하는 설정도 상덕(최민식)이 꼭 이 쇠말뚝을 뽑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출처: 쇼박스
(출처=쇼박스)


뿐만아니라, 무당 화림으로 완전 변신한 김고은 연기는 압권이다. 대살굿을 하는 그녀는 딱 무당 자체였다. 무당이라 믿어도 될 정도다. 굿하기 전 어깨를 들썩들썩 할 때부터 무당의 '포스'가 배나온다. 아마도 많은 관객이 그녀의 무당 연기를 보러 극장에 오는 것 아닐까도 싶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고은이 무당역을 맡은 것도 대단하다. 

봉길 역의 이도현도 놀라웠다. <더 글로리>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의사로서 연기를 보았지만, <파묘>에서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법사로서 북을 치며 경전을 암송하거나, 빙의된 상태로 병상에 누워서 은어를 먹는 모습이라든지, 그리고 혼이 들어온 연기도 일품이었다.

(출처=쇼박스)출처: 쇼박스
(출처=쇼박스)출처: 쇼박스


앞선 세 배우에 비해 장의사 영근역의 유해진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분위기를 안정감 있게 끌어간다. 필요한 장소와 필요한 부분에서 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일장춘몽>에 이어 장의사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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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전설의 고향

<파묘>를 두 번 관람하니 국제적으로 확장된 현대판 ‘전설의 고향’ 같았다. 1부는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이 결합한 형태라면, 2부는 민족사와 결부된 일본의 주술과 관련 있다.

화림(김고은)에 파묘를 의뢰한 상주 박지웅(김재철) 가족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조부다. 불편하고 좁은 곳에서 편하게 쉬지 못하던 그는 관에서 나오자 결국 아들과 손자를 데려간다. 조상 묫자리와 관련해서 어려서부터 자주 들어오던 이야기다.

2부는 일본 음양사가 백두대간의 범의 기운을 끊기 위해, 일본 귀신을 속여 데려와 주술을 걸은 설정이다. 쇠막대 대신 귀신을 상정한 사실은 뛰어나고, 그 귀신을 은어로 불러내 마치 산신과 대화하는 듯한 장면은 흥미롭다. 산신을 생각해내다니 기발하다. 일본 귀신(정령)과 화림의 할매(화림의 수호신 혹은 화림에게 굿을 전수한 사람)의 대치 또한 절묘하다. 거구의 일본 귀신과 하얀 소복의 할매 귀신은 여러 가지로 대비된다. 장재현 감독은 이렇듯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관객의 몰입과 집중을 유도하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3월 1일(개봉 9일차) 기준 400만명 이상이 <파묘>를 관람했다. 이 속도라면 천만 관객을 돌파하리라 예상한다. <파묘>는 작품성보다 대중성에 더 역점을 둔 것 같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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