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하광용의 인문교양에세이]

<조선작 / 안정효 / 조해일 / 조세희 / 조정래 / 황석영 / 최인호 / 한수산 / 박범신 / 이외수 / 복거일 / 김홍신 / 이문열 / 김훈>

이 14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작가, 소설가, 베스트셀러 소설작가... 어떻게 불러지든 꽤나 유명세가 있는 작가들입니다. 이들 옆에 그들이 쓴 다수의 작품들까지 열거하면 꽤나 긴 줄을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문학의 장르 중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될 수 없는 것은 작가들마다의 개성과 결, 탐구하는 주제의식, 이데올로기, 그리고 글을 쓰는 문체 등과 그것들에 따라 호불호가 나눠지는 독자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최인호(2013), 조해일(2020), 조세희(2022), 이외수(2022), 안정효(2023) 등 5명은 유명을 달리해 이젠 생과 사의 문제도 공통점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공통점은 이들 이름만큼이나 크고, 이들이 히트시킨 소설만큼이나 많지만 이 글에서 출제자인 제가 요구하는 답은 이들의 작품 세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작품 밖에 별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크게 놀랄 일까지는 아니지만 놀랍게도 이들 모두는 194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조선작 1940 / 안정효 1941 / 조해일 1941 / 조세희 1942 / 조정래 1943 / 황석영 1943 / 최인호 1945 / 한수산 1946 / 박범신 1946 / 이외수 1946 / 복거일 1946 / 김홍신 1947 / 이문열 1948 / 김훈 1948>

보듯이 모두 1940년대 생입니다. 물론 그 이전인 1930년대에 태어난 소설가도 있고, 그 이후 1950년대에 태어난 소설가도 있습니다만 대중적인 유명세로 볼 때 다른 세대엔 이들 만큼의 숫자가 꼽아지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든 소설가는 늘 많이 존재해왔을 것입니다. 특히 이들 이후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어지므로 더 많은 미래의 소설가들이 태어났을 것입니다. 요즘 정치판에 586세대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들 중에선 제가 인지 못하는 소설가들도 많을 것입니다. 제가 소설에 아주 관심이 많거나 문학계 종사자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단언컨대 출생 세대의 유명세로만 보면 우리나라 역사상 위의 작가들만큼 정상권의 소설가들이 많았던 세대는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소설가들이 활동했으므로 장편소설가로 한정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는 있겠습니다. 한편 요즘 부각되는 웹소설의 영역은 제가 전혀 모르나 대중적인 인지도나 인기도를 이야기하므로 위의 소설가들과는 비교되지 못할 것입니다.

1940년대에 태어난 위의 작가들이 여느 남자들처럼 대학 교육을 마치고, 군대를 제대하고 30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댄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우리나라 소설의 전성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7080이 포크송이 유행했던 대중음악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서점과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참 많은 소설책이 보였습니다. 지하철, 커피숍, 터미널, 학교 등 사람을 만나고 어딘가로 향하는 장소엔 어김없이 소설책이 보였습니다. 제가 그 당시 회사원은 아니었지만 직장의 책상 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즉 이동하는 사람의 손이나 가방 속엔 소설책이 한 권쯤은 들려있고, 들어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휴가지나 여행지에도 소설은 주인과 함께 따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읽는 책은 다소 가볍고 통속적인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용품으로도 소설은 역할을 다했습니다. 선물을 주는 전달자의 상황에 유리한 내용이 담긴 책을 건넸을 테니까요.  

긴 세월 소실되지 않고 아직도 제 서가에 남아있는 7080년대 쓰인 소설책


그 시절 신문이나 잡지를 펼치면 그곳엔 소설이 연재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신문사와 잡지사는 유명 소설가의 작품을 자사지에 연재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곤 했습니다. 그래도 완본으로 출간되어 있는 책이 아니라 매일매일 싣는 연재물이기 때문에 구독률을 사전에 파악할 수 없어 다분히 도박을 하는 심경으로 소설가들과 계약을 했을 것입니다. 요즘 드라마에서 유명 작가들과 사전 계약을 하고, 영화에선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토하고 투자를 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흥행의 보증수표와도 같은 인기 소설가는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재한 그 소설이 회를 거듭하며 인기가 오르면 그 신문과 잡지의 판매 부수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에 연재 중인 소설을 훔쳐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작고한 최인호 작가의 <불새>라는 소설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 당시 그 소설은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었습니다. 통속적인 성인 소설이라서 호기심 많은 까까머리 중학생은 매일 새벽 신문이 오면 아버지 몰래 그것을 훔쳐보곤 했습니다. 사실 몰래 안 봐도 되는데 그 연재소설 페이지를 펼치면 괜히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이 들곤 하였습니다. 특히 특정 연애나 정사 장면이 묘사되는 날이라도 되면 심장까지 콩닥콩닥 뛰며 그것을 읽곤 했습니다. 때 묻은 사랑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아마도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대개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이 신문을 보면 기특해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 그것은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물론 이젠 아버지도 신문을 잘 안 보니 어린 자식까지 신문을 보는 일은 아주 흔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그렇게 확실하게 본의를 가지고 발췌해서 읽은 소설 <불새>의 등장인물이었던 영후, 민섭, 현주, 미란의 이름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TV의 주말의 명화를 통해 알랑드롱이 나온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보았을 때에도 왠지 모르게 그 소설과 등장인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신문과 잡지에 연재된 소설이 끝나면 그것은 단행본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독자들은 조급해하거나 답답함 없이 단번에 그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단행본 소설도 대하소설이라 여러 편이 시간차를 두고 출간되면 그 소설 다음 편이 나오는 날에 서점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엔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이 그렇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무려 20권이나 나오며 그 책은 560만 부가 팔려 국내 출판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니까요. 현대판 무협지와도 같던 소설이었습니다. 그 소설 역시 시작은 1981년에 연재한 <주간한국>이라는 잡지였습니다. 그렇게 신문과 잡지에서 연재되던 소설은 소설책으로 완성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수명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인기소설이라면 변신 로봇처럼 또 한 번의 변신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종이에 활자로 가지런히 눕혀있던 그 내용들이 벌떡 일어나 살아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최인호 작가 원작의 ‘별들의 고향’ 영화 포스터 (소설 1972, 영화 1974)
최인호 작가 원작의 ‘별들의 고향’ 영화 포스터 (소설 1972, 영화 1974)

7080년대 인기소설은 영화나 드라마가 되는 일이 빈번했고 이후엔 연극과 뮤지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경우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1940년 생으로 맏형 격인 조선작 작가의 <영자의 전성시대>를 시작으로 장미희 씨를 일약 은막의 스타덤에 오르게 한 조해일 작가의 <겨울여자>를 비롯해 당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끈 최인호 작가의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겨울 나그네>,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이 7080년대의 극장을 북적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신문에서 훔쳐본 <불새>도 영화와 드라마로 재탄생되었습니다. 그것도 몇 번에 걸쳐서 리메이크되었는데 가장 최근인 2020년도 SBS 드라마 <불새>도 원작이 최인호 작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런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안정효 작가의 1980년대 작품인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도 역시 모두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도 몇 편에 걸쳐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위의 소설가들의 경우 그들이 쓴 소설을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작가들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는 1940년대 생 막내 격인 김훈 작가의 경우 그가 쓴 <남한산성>은 2007년에 출간됐지만 영화 제작자인 그의 딸이 판권을 사서 2017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위의 1940년대생 작가들 중 유일하게 7080년대에 쓴 소설이 없는 유일한 작가입니다. 그때 그는 기자로 사회의 이곳저곳을 발로 뛰어다니며 장르가 다른 글을 썼습니다.

이렇게 유명 소설가의 유명 소설은 신문이나 잡지에서 연재되고, 이후 소설책으로 출간되었으며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연극과 뮤지컬로 각색되어 독자들과 관객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몇 번에 걸쳐 재탄생된 것입니다. 과연 대단한 소설의 시대였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자 입장에서 인기를 끈 소설만큼 좋은 시나리오와 드라마 각본은 없을 것입니다. 검증된 작품이니 실력 있는 연출자를 선정해서 제작하면 실패의 확률이 낮기에 너도나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물론 위의 작가들이 쓴 소설이 모두 연재소설부터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완본인 소설로 나온 작품들도 많았으니까요.

지난 2월 저는 위의 소설가들 중 한 명인 한수산 작가를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뵌 것은 아니고 제가 관여하고 있는 인문학교실에 그를 강사로 초빙한 것입니다. 위에서 밝힌 그의 출생년은 1946년이니 현재 그는 78세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이 땅에 태어나 작가가 되어>란 제목으로 그의 삶과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소설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날 그를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날 저는 이 글의 처음처럼 소설가들의 이름을 열거해 놓고 참석한 청중들에게 공통점 찾기 문제를 내면서 한수산 작가를 청중들에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일군을 이룬 1940년대 생 소설가이면서 7080년대 우리나라 소설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라고 말입니다.

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한수산 작가의 ‘부초’ (민음사 1977)

누가 뭐래도 그의 대표작은 1977년에 출간한 <부초>일 것입니다. 1970년대 들어서며 사라져 가는 유랑극단을 소재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단원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 소설은 통속소설이 아닌 순문학소설로는 국내 최초로 100만 부를 돌파한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부초>도 당시 영화와 TV 드라마는 물론 라디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특이한 이력은 이듬해인 1978년엔 가수 박경애 씨가 <곡예사의 첫사랑>이란 노래로도 불러 히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연극의 경우는 34년 후인 2011년이 돼서야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그간 실연이 힘들어 문제가 됐던 곡예 공연 장면을 배우들이 곡예단원들에게 기술을 배워서 가능해진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야생의 부초는 보잘것없으나 소설 <부초>는 대단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가 47년이 지난 지금도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꿋꿋하게 서점에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세계사에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던 시절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평화로운 가운데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유럽의 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프랑스어라서인지 프랑스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대표 격인 수도 파리에서 특히 융성했던 예술과 문학의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곤 합니다. 사라진 그 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그때를 추억하면서 말입니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음악에선 자국 출신의 생상스, 드뷔시, 비제가 있었고 해외파로는 벨기에의 세자르 프랑크와 이탈리아의 롯시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오펜바흐도 그때 파리에 와 있었습니다. 미술 분야는 더욱 압도적이었습니다. 자국 출신인 르누아르, 고갱, 세잔, 마네, 모네, 쇠라, 시냑, 로트렉, 로뎅 등이 모두 파리에서 모여 활동했고, 스페인에선 피카소, 미로, 달리가, 네덜란드에선 고흐가, 카리브해에선 피사로가, 러시아에선 샤갈이 파리로 와서 몽마르트르 언덕을 가득 메웠습니다. 또한 문학 쪽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혁명기를 거친 빅토르 위고를 필두로 쥘 베른, 에밀 졸라, 모파상, 플로베르, 조르주 상드 등이 파리의 카페를 가득 메웠습니다. 역사상 이렇게나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이 한 도시를 채운 적이 있었을까요? 그런 벨 에포크로 인해 그때부터 파리는 세계 문화의 수도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지만 그들은 파리를 떠납니다. 파리가 그들의 젊은 날엔 화려한 불빛 아래 그 북적임 속에서 커피와 와인잔을 들며 정력적으로 활동하기엔 좋았는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각자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발견한 그들은 그것에 맞는 새로운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은 지나간 추억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벨 에포크가 끝난 것입니다. 물론 그들 중에선 파리에 끝까지 남은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음악당이 있는 대도시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음악가들은 그곳에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위의 문인들 중에선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모파상은 끝까지 파리에 남았고 죽음도 그 도시에서 맞았습니다. 하지만 쥘 베른은 아미앵, 플로베르는 크루와세, 조르주 상드는 그녀 집안의 영지인 노앙으로 옮겨갔습니다. 미술의 화가들은 장르의 특성상 파리를 떠나 각자의 작업에 유리한 풍경과 태양, 모델과 오브제가 있는 곳을 찾아서 떠나갔습니다. 주로 남불 프로방스 지방의 소도시에 그들의 새 보금자리를 꾸렸습니다.

7080년대에 활동한 위의 소설가들은 주로 서울에서 그들의 젊은 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더 가난했던 작가들은 도시의 귀퉁이에서 그들의 청춘을 불사르며 원고지와 대학노트를 까맣게 채워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글자만큼이나 많이 인사동과 충무로, 대학로 등에서 술잔도 비웠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노력과 고뇌는 헛되지 않아 비로소 그들이 쓴 소설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대 우리가 사랑했던 명작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소설의 황금문이 열렸습니다. 아름다운 소설의 시대, 7080년대는 우리 소설의 벨 에포크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가 끝나가며 소설은 다른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IT 산업의 발달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다양하고도 첨단인 미디어들이 등장하며 소설이, 정확히는 종이 소설책이 과거와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7080년대 전성기를 누린 작가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활동력이 감퇴하는 가운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그들만큼 뛰어난 후배 작가들이 덜 출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인터넷의 출현으로 웹소설이 인기를 끌고, 소설과도 같은 스토리가 있는 게임 산업이 성행하고, 과거처럼 소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실력 있는 작가들이 진출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벨 에포크처럼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이 안 터져도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위의 소설가들 중에선 수도 서울을 떠나 지방에 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에서 벨 에포크를 졸업하고 지방으로 떠났던 위의 프랑스 작가들과 화가들 중 서북쪽 근교 지베르니로 간 모네나, 태양을 찾아 남쪽 아를로 내려간 고흐나, 멀리 태평양의 타이티로 간 고갱이나, 새 애인과 함께 앙티브로 간 피카소 등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붓을 놓지 않고 작품활동을 했듯이 말입니다. 그들처럼 이문열 작가는 새 작업실인 이천의 부아악산 산자락으로, 박범신 작가는 고향인 논산으로, 김홍신 작가도 역시 그가 자란 논산으로, 조정래 작가는 강원도 오대산 입구로, 황석영 작가는 익산으로 내려가 각각 그곳에 집필실을 만들고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외수 작가는 생존시 그가 자란 강원도의 화천에 집필실을 두고 유명세를 이어갔었습니다. 물론 모든 작가가 서울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든 생존 작가들은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펜을 잡고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신작들을 발표하니까요.

7080년대 소설 중흥기를 이끈 이문열 작가의 집필실인 이천 부악문원에서의 인터뷰 (서울경제 2020. 1. 16)
7080년대 소설 중흥기를 이끈 이문열 작가의 집필실인 이천 부악문원에서의 인터뷰 (서울경제 2020. 1. 16)

보듯이 이들 일군의 소설가들이 지나온 행보는 이 글 제목으로 올린 파리의 벨 에포크를 그대로 연상하게 합니다. 벨 에포크의 사이클과 유사하게 움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미군정, 대한민국이 오버랩된 어렵고 혼란스러운 194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성년이 되며 7080년대를 화려한 소설의 시대로 꽃피웠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문학적 재능이 시대에 올라 타 우리나라 소설의 황금기를 구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설은 다양한 문화 미디어로 전이되며 20세기말 우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시절 남긴 명작과 요즘도 발표하는 신작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요. 위의 14명의 소설가들과 리스트에서 빠진 그 시대의 모든 소설가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감사를 드립니다.

하광용은 대학 졸업 후 오리콤, 이노션 등에서 광고인 한 길로만 가다가 50세가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사 이때 저때, 이곳 저곳, 이것 저것, 이사람 저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많다. 박학다식한 사람은 깊이가 약하다는 편견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을 존경하고 지향한다. 박학과 광고는 어찌보면 ‘넓다’라는 측면에서 동일성을 지닌다. 최근 <TAKEOUT 유럽예술문화> <TAKEOUT 유럽역사문명>이라는 인문교양 에세이집을 출간한 그는 태평양인문학교실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광용 작가의 책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와 '테이크아웃 유럽역사문명'.
하광용 작가의 책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와 '테이크아웃 유럽역사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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